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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사도세자 VS 역사서에서 말하는 사도세자 모습은?

비밀의 문 사도세자 VS 역사서에서 말하는 사도세자 모습은?

<임오화변이 시작된 장소>

 

 

어제부터 시작한 비밀의 문! 드라마는 사도세자를 둘러싼 많은 역사서 중, 아들 정조가 적은 '어제장현대왕지문'에 등장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어요.

 

'어제장현대왕지문'에서 '효종의 뜻을 이어 북벌의 꿈을 품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친히 <무기신식>이라는 병법서를 지을 만큼 무재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애민하는 마음조차 깊어 성군의 자질이 충분했던 이'로 사도세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과연 이게 사실일까요?

 

과연 역사 속에 사도세자의 모습과 드라마에서 그리는 사도세자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지금부터 행복한:D와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1900년에 그려진 사도세자 모습>

 

 

드라마에서 사도세자는 신분의 귀천이 없는 공평한 세상을 주장하는 인물로 그려져요. 하지만 정치에는 능하지 못해 웃으며 숨기려 하지만 불쑥 드러나는 본심을 감추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해요.

 

처음엔 그저 신하들이 올린 문서만을 요령껏 살펴 적당히 수결 하는 어항 속에 갇힌 인물이었지만, '의궤살인사건'을 통해 세상의 진실을 담기에 한 장의 문서는 너무 협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직접 세상에 나가 골목을 살피기 시작해요.

 

정의를 바라는 포교의 동료, 상인과 기술자의 후견인, 광대의 관객, 기녀와 소설가와 만나며 점차 사도세자는 타고난 신분으로 사람의 가치를 달지 않는 '공평한 세상'을 꿈꾸게 된답니다.

 

 

 

 

<사도세자 영서>

 

 

효장세자가 열 살의 나이로 죽고 몇 해가 지나도 왕자가 태어나지 않다, 7년이 지났을 때 태어난 아들이 바로 사도세자예요. 당시 마흔 둘의 나이었던 영조는 얼마나 기뻤는지 태어나자마자 아기에게 원자의 명호를 내리고, 이듬해에는 세자로 책봉했어요. 

 

게다가 아기는 몸집도 크고 총명했답니다. 태어난 지 네 달 만에 기었고, 여섯 달 만에 영조의 부름에 답할 수 있었으며, 두 살에 한자를 배워 육십여 자의 한자를 썼다고 해요. 이런 기록이 역대 다른 왕자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사도세자가 얼마나 특출 났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영조도 이런 세자를 몹시 귀여워하며 팔불출 소리를 들을 만큼 자랑하며, 대신들에게 한번씩 안아보게 했다고 해요. 심지어 대신들 앞에서 글씨를 쓰게 하여 나눠주기도 했다고 전해져요.

 

하지만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새벽에 일어나 밥 먹고 문안인사 드리는 시간 외엔 모든 시간을 공부만 하며 보내야 했던 세자는 차츰 공부보다는 무예를, 유교 경전보다는 잡학에 관심을 가지게 돼요. 그리고 이때부터 점차 영조는 기대했던 세자의 실망스런 모습 때문인지 말에 트집을 잡으며 화를 내기 시작해요.

 

영조가 어떤 대답을 해도 항상 꾸짖자 점차 세자는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아는 것도 잘 대답하지 못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최대한 보지 않기 위해 어느 날부터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기 시작해요. 심지어 약 4개월 동안 왕을 찾아 뵙지도, 문안인사도 드리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영조를 불편해했는지 알 수 있답니다.

 

영조의 지속적인 질책과 훈계는 점차 세자의 마음을 병들게 만들었어요. 실록에서는 단순히 병이 있었다고 되어있지만 한중록을 보게 되면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등장해요. 사람의 발소리만 들려도 극도로 불안해 한다거나, 가슴이 답답하며 울음이 나고 마음이 아프니 약을 찾아봐 달라고 호소하는 편지 등을 통해 세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어요.

 

이런 정신적인 문제는 때때로 광폭한 행위로 나타났는데, 생모인 영빈 이씨의 내인과 내관 등을 처참하게 살해했고, 가족들에게까지 위험한 행동을 할 정도였다고 해요. 이런 행동을 지켜보던 영조는 결국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뒤주에 세자를 가두고, 포도대장 구선복을 시켜 지키게 하였어요. 그리고 사도세자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뒤주에 갇힌 지 8일만에 사망했어요.

 

 

 

<사도세자가 장인 홍봉한에게 보낸 편지>

 

 

1. 백성을 사랑한 인물  VS 광증으로 신하를 죽이는 인물

 

비밀의 문에서 사도세자는 지극히 성왕의 면모를 갖춘 인물이에요. 백성의 생활을 직접 보기 위해 그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위한 공평한 세상을 꿈꾸게 되죠.

 

하지만 실제 실록이나 한중록에 묘사된 그의 모습은 영조의 지속적인 핍박으로 정신적인 병을 앓은 인물이에요. 이런 광증으로 인해 한중록에서는 생모인 영빈 이씨의 내인마저 죽이고, 내관 등을 처참하게 살해했다 밝히고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하를 죽이는 그가 백성을 사랑했다고 쉬이 연결 지어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도 사실이에요.

 

 

2. 백성의 삶을 알아보기 위한 행보 VS 영조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환락

 

비밀의 문은 문서에 나와있지 않은 백성의 삶을 직접 보기 위해 사도세자가 밖으로 나갔다고 말하지만, 역사서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당시 궁에서는 세자가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궁 밖으로 놀러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사실이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주로 잡희, 사냥, 민가출입, 유람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궁 밖에서 유람하고 즐기는 비용으로 많은 국고를 탕진하였고, 실제 나경언은 고변으로 이에 대한 언급을 영조께 드렸다고 해요.

 

그러고도 돈이 부족해 시전상인들에게 많은 돈을 빌려 썼는데, 나중에 영조가 그 빚을 갚아주려 빚이 얼마냐고 묻자 액수가 상당했다고 해요. 과연 어떤 모습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그들과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국고를 낭비할 정도의 돈을 사용했다고는 상상하기 쉽지 않지요.

 

 

3. 진실을 찾기 원하는 패기 VS 영조가 두려워 병에 걸린 나약함

 

비밀의 문 드라마 소개를 보면 진실을 알기 위해 아버지의 뜻에 맞서 시대적 대의를 선택한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그려져요. 심지어 노론의 영수 김택과 스승 같은 신하 박문수가 말려도 진실 찾기를 멈추지 않죠.

 

하지만 실제 그는 아버지 영조를 두려워하였고, 그런 두려움으로 꾀병이든 무엇이든 최대한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영조 33년 11월 영조가 신하들에게 세자가 7월 이후 영조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이는 유교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무척 충격적인 일이었답니다.

 

이후, 이런 두려움 때문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벌렁거린다던가 하는 병까지 앓게 되는 그가 영조와 맞서 진실을 파헤쳤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