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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택시운전사> 관객 수는 개봉 11일 만에 700만을 돌파하여 천만 관객을 넘보고 있는데요. 5.18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겪었던 어른들과 책에서만 보던 일을 영화로 만나게 된 젊은 세대가 함께 극장에 모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독일 기자였던 외국인 '위르겐 힌츠페터'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 내용을 찾아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 속 외국인들을 소개해드릴게요!
5.18 민주화운동과 위르겐 힌츠페터
< 출처 : 영화 택시운전사 공식 홈페이지 >
위르겐 힌츠페터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입니다. 1973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 도쿄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한 위르겐 힌츠페터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의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들어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급변하는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80년 9월 <기로에 선 한국>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 판결에 항의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고, 86년 광화문 시위에서 경찰에게 목과 척추를 맞아 중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지난 16년 1월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위르겐은 광주의 모습을 담기 위해 함께 고생하며 최선을 다해준 친구 택시운전사 김사복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고 해요. 위르겐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여했고, “내가 죽거든 광주에 묻어달라”는 그의 말에 따라 유품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묘역에 안치했습니다.
네덜란드인의 눈으로 본 17세기 조선, 하멜
< 출처 : The Journal of Hamel and Korea 홈페이지>
1653년 일본으로 향하던 네덜란드 배가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안착했습니다. 이때 먼저 조선에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이 통역을 맡아 하멜을 포함한 네덜란드 상인들을 도왔습니다. 서울로 옮겨진 하멜은 고향에 가기 위해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효종에게 여러 번 빌었지만, 효종은 이들을 보내주지 않았어요. 결국 하멜은 동료 7명과 함께 조선을 겨우 탈출해 일본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의 경험으로 17세기 조선의 모습이 담긴 <하멜 표류기>를 집필했습니다. 왕이었던 효종은 물론 일반 백성과 양반, 병사들의 삶과 조선의 생활과 정치, 무역, 지리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세세하게 기록해두었어요. <하멜 표류기>는 서양에 조선을 최초로 소개 한 책이자 당시 조선의 모습을 이방인의 눈에서 담은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외국인 독립운동가, 베델
< 출처 : Wikimedia Commons >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은 당연히 우리나라 사람만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외국인 독립운동가도 있었습니다. 영국의 기자였던 베델은 특파원으로 1904년 한국에 들어와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사장이 되었습니다. 국한문, 순 한글, 영어로 3가지 신문을 발행하여 일제의 침략에 대한 비참한 심정을 강하게 내비쳤습니다. 일본의 언론탄압이 심한 시기였지만, 외국인은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었기에 함부로 <대한매일신보>를 검열하지 못했습니다. 베델은 신문에 항일 의병의 소식을 보도하고, 항일 운동의 아지트 역할을 하며 국민의 독립에 대한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격려했고, 고종의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37살에 숨을 거두며 마지막 유언으로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민족을 구하라.”고 남길 정도로 한국의 독립을 누구보다 갈망했습니다. 현재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잠들어 있는 베델은 한국인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 사망 당시 전국에서 애도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죽기 전까지 독립을 염원해 준 베델의 염원이 더해져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자주독립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종의 밀사, 헐버트 대사
< 출처 : Wikimedia Commons >
미국인 호머 헐버트는 을사늑약 당시 고종의 밀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전하려고 했던 선교사입니다. 서신 전달을 비롯해 외국에 조선이 처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기도 했죠. 1886년 설립된 근대식 국립 교육기관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조선에 온 헐버트는 5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선교사의 자격으로 다시 조선에 돌아와 고종에게 자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로 만국평화회의에 참여해 우리나라의 처지를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이 헐버트의 입국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헐버트는 미국에 돌아간 후에도 일본의 잔인한 만행을 세계에 알렸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국빈으로 헐버트를 초대했습니다. 하지만 긴 여행에 지친 헐버트는 한국에 온지 1주일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헐버트도 베델과 함께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묻혀 있습니다. 미국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인으로 잠든 헐버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활약한 외국인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당연하게만 느껴지지만, 이렇게 살게 되기까지 많은 분의 노고가 있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올해 광복절은 역사 공부를 하며 나라를 위해 힘쓴 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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